바둑에서 시작된 AI 혁명에 대한 단상
1. 바둑계에 먼저 도착한 미래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꺾던 그 순간, 바둑계는 인공지능 시대의 가장 선두에서 충격을 맞았습니다. 당시 세계 최강급 기사들조차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던 AI의 수법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 진가를 인정받았습니다. 바둑을 두는 방식 자체가 완전히 바뀌었고, ‘AI 포석’이라는 새로운 체계가 자리잡았습니다. 수천 년 간 이어져 내려온 정석은 “역사적 가치밖에 없다”는 평가를 받으며 폐기됐고, 젊은 기사들은 AI 사고방식을 철저히 연구하여 세계 최정상에 올랐습니다.2. 인간만의 바둑은 밀려났다
알파고 이후, 많은 기사들이 “AI가 둘 수 없는 인간만의 바둑을 두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습니다. 인간만의 감성이나 직관으로 두는 바둑은 점점 도태되었고, AI가 추천한 수를 얼마나 정확히 따라가는지가 경기력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팬들도 이제는 프로 기사들이 AI 추천수에 얼마나 근접한 수를 두는지를 평가하며, 해설자의 권위도 AI와 비교되기 시작했습니다. 바둑의 성격이 완전히 바뀐 것입니다.3. 바둑은 더 이상 도(道)가 아니다
과거에는 바둑을 통해 인격을 닦고, 사유의 깊이를 쌓는다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바둑 학원에서는 예의를 배우고 집중력과 인내심을 기르며, 이기고 지는 법을 배우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네가 틀렸다고 말하지 않고, AI는 뭐라고 말했는지 보자”고 가르치는 시대입니다. 인간이 가르치는 바둑은 더 이상 최고 수준이 아니며, 바둑 교육의 성격 자체가 변화하고 있습니다.
4. AI가 기준이 된 세상
AI는 수 하나하나에 대해 “이 수를 두면 승률이 4.9% 떨어진다”고 말합니다. 10년 전만 해도 바둑인들이 “말도 안 된다”고 일축했을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이 수긍합니다. 왜냐하면 AI가 바둑을 제일 잘 두기 때문입니다. 더 무서운 것은, AI가 왜 그 수를 두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만든 사람도, 최고 기사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이제 “그 수가 맞으니까 맞다”고 수용할 수밖에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5. 바둑에서 시작된 변화, 다른 분야도 피하지 못한다
AI가 바둑을 지배한 방식은 의료, 판결, 예술 창작 등 다양한 분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정신과 진단, 재판 판결, 예술 작품까지 AI가 더 나은 결과를 내놓기 시작하면, 인간 전문가의 권위는 추락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AI의 판단에 의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정말 옳은 판단인지 모른 채 말입니다.6. 인간관계까지 침투하는 AI
AI는 이제 단순한 계산기를 넘어서 인간의 감정, 관계까지 모방하고 영향을 미칩니다. 영화 'Her'처럼 감정적인 위로와 응원을 해주는 디지털 친구가 등장하고, 외로움을 달래주는 AI가 더 많은 사람들의 선택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인간 관계의 스트레스를 피하고, 항상 다정한 AI에게만 기대게 되는 삶. 그것은 정말 좋은 삶일까요?7. 기술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많은 기술자들은 기술은 중립적이라고 말합니다. “칼은 강도 손에 들리면 무기고, 요리사 손에 들리면 도구일 뿐이다”라는 말이죠. 그러나 총은 요리할 수 없습니다. 기술 자체가 목적과 의도를 담고 있으며, 권력과 결합하면 사회 구조를 바꿔버리는 힘을 갖게 됩니다. 기술이 인간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인간 사회를 재구성하는 겁니다.